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양읍 남창리의 3.1운동을 주도한 이재락(李在洛)도 이 집에서 살았다. 가옥의 배치에서 행랑채, 사랑채, 안채의 구분이 뚜렷하고, 따로 사당을 갖추고 있어 조선 후기 사대부 종가집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건축 양식을 보면 사랑채는 툇마루가 있는 3칸 홑집의 평면 가옥이다. 안채는 보를 다섯줄로 얹어 넓이가 두 칸통되게 한(五梁架構) 위에 팔작지붕을 얹은 정면 6칸의 비교적 큰 건물로, 기둥도 개인 집에서는 쓰지 않던 둥근 모양이고, 다른 사대부집 안채와 달리 넓은 뒷마당이 있다.
이 부도는 동서로 세워진 같은 모양의 부도로, 전형적인 팔각원당형(八角圓當形)을 취하고 있는 통일신라 말기의 아름다운 부도로 우아함과 단아함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울산의 역사성을 상징하는 처용설화와 관련있고 용을 제사지내기 위해 세웠다는 창건설화가 전해져 오는 망해사(望海寺)의 옛터는 울산시 울주군 청량면 율리의 산자락 속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부도는 동서로 세워진 같은 모양의 부도로, 전형적인 팔각원당형(八角圓當形)을 취하고 있는 통일신라 말기의 아름다운 부도로 우아함과 단아함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울산의 역사성을 상징하는 처용설화와 관련있고 용을 제사지내기 위해 세웠다는 창건설화가 전해져 오는 망해사(望海寺)의 옛터는 울산시 울주군 청량면 율리의 산자락 속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부도는 이름난 스님들의 유골(遺骨)을 모시기 위해 세운 돌탑을 말한다. 왼쪽 부도는 높이 3m로 지대석, 기대석, 연꽃 좌대, 탑몸(塔身)의 차례로 짜여져 있다. 기대석 남북면에는 인왕상을, 동서면에는 연꽃무늬를 돋을 새김 했다.